개발자로 일한 두번째 직장을 퇴사하고쯤이었던 것 같다. 퇴사 이전에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갑작스레 주어진 많은 시간과 자유로운 감정들 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다음 스텝으로 재취업을 고려하기보다는 자그마한 사업들을 여러개 벌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닌 내 일로 생계를 유지해나간다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경험일거라는 생각. 또 아직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나의 삶을 살아보기 위해서 몇개의 캐시카우가 있다면 좋겠다는 낙관적인 상상이 한 몫 했다.
독일로 들어온 직후 Ludwigshafen의 airbnb 숙소에서 잠시 머물 때, 본격적으로 무언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닉네임을 만들고, 티스토리 블로그 디자인과 카테고리를 조금 손봤다. X(twitter) 계정도 개편하고 Github 프로필도 조금 수정했다. 이때쯤부터 Indiehackers와 reddit, twitter 등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으며 영감을 얻기 시작했다. 주로 접하는 글들의 소스가 온라인이기도하고 내가 개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디지털프로덕트를 주로 고려해보기는했지만, 시간만 있으면 다른 어떤 일도 벌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후 세달동안은 내가 하고싶은 비즈니스를 구체화해볼 새도 없이 흘러가버렸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고 정착하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들, 감당할 수 없는 양으로 몰아치는 외주 작업들, 1월부터 시작한 독일어코스, 취업준비를 위한 스터디 및 프로젝트, (사업을 염두에 둔) 또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 등.. 이외의 다른 것들은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이 흘러가버렸다. 여러 일들을 동시에 하는 생활 자체는 물론 힘에 조금 부치기도 하지만, 오히려 내 생산성에 대해 고민하는 모멘트를 만들어주고, 또 아직은 체력이 그럭저럭 할만하다는 점에서 사실 그렇게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이렇게 힘에 부치게 살아내는 삶의 순간들이 나에게 가치가 있다고 느끼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스스로 "그렇다"라고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 사업인지, 개발인지, 글쓰기나 콘텐츠제작을 포함한 넓은 범위에서의 창작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 내가 관심을 가지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분야(도메인)는 무엇인지?
- 사업을 한다면 사업의 어떤 측면을 수행하는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인지 - 개발인지, 영업인지, 마케팅인지, 운영인지?
- 나는 어떤 개발자인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봐도 어느 한 지점으로 생각이 좁혀지지 못하고 뱅뱅 맴도는 기분만 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그마한 능력들과 실행력, 잠재력에 대해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애초에 비즈니스를 해보겠다는 접근이 나에게는 맞는 옷이 아니었던거 아닐까? 그냥 기분 좋은 상상으로 지나갔어야 할 것을 내가 지나치게 진지하게 생각해보려 하는걸까?
...
가끔 마음의 여유가 생기거나, 모종의 이유로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할 때면 나의 생활을 한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순간이 생긴다. 생활 속에 묻혀있던 생각이 조금 명료해지고, 놓고있던 삶의 방향키를 살짝 움직여볼 마음의 힘이 생긴다. 오늘 아침에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이렇게는 안 된다, 다시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찾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인드맵을 이래저래 그려보다가 문득 블로그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업을 하게 될지, 개발자 커리어는 어떻게 발전시킬지, 혹은 유학을 하게 될지. 이 중 몇가지를 동시에 하게 될지, 아니면 아직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다른 무언가를 하게 될지.
그냥 앞으로의 완전하지 않을 여정을 기록해두고 싶어졌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서 나의 출발 지점을 기억할 수 있게하는 용도 정도는 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릴 때 썼던 일기를 다시 보는 건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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