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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글쓰기

일단 독일어를 다시 배워보자

by Kyle Ausk 2024. 3. 26.

독일에서 구직을 시작한지 한달이 넘었다. 현재까지 서류합격률 0%라는 놀라운(?) 기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쯤되니 '독일에서 영어로 일하는 개발자로 취업하기'라는 목표가 과연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 의심이 된다. 존버는 승리한다는 말이 있지만, 과연 그러한가?

존버는 승리하나..?

 

 

구직이 잘 안되도록 허들이 되는 요인들을 생각해봤다.

 

첫째, 개발자 채용 시장 혹한기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이 시장이 확실히 어렵긴 한가보다. 정보들을 찾아가며 통계적으로 채용시장을 분석해본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독일 내외의 IT업계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게 되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채용시장이 어렵다는데 동의한다. 내가 독일에 오기 전 이미 이곳에서도 layoff 바람이 한바탕 불었고,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보였다. 나는 링크드인에서 주로 구직을 하는데, 체감상 영어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의 공고가 그리 많지 않으며 주니어 개발자를 뽑는 공고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건 독일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도, 아니 그냥 전세계 IT업계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어립잡아 퉁쳐 말해도 되는듯하다. 개발자 채용시장이 코로나의 유행으로 한창 호황이던 시기와는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는 작년부터 있었지만, 이걸 이렇게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되니 답답한 마음이 든다.

 

둘째, 핏이 맞는 회사가 나를 발견하는 천운이 따르지 않는다. 아무리 채용시장이 좋지 않다한들 나와 핏이 맞는 회사가 딱 하나만 존재하면 되는 법이다. 흔히 하는 말로 100개의 회사에 합격한 사람이나 1개의 회사에 합격한 사람이나 어차피 한 개의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하지 않는가? 돌이켜보면 지난 직장들에 들어갈 때도 언제나 내가 자격요건이 충분했던 사람이어서 구직에 성공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항상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내가 가진 hard & soft skill들이 어찌됐든 회사의 기존 구성원들이 필요로하는 자질들이었고, 그것이 맞아떨어져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의 구직도 그런 천운이 나에게 따라준다면 되는 일이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싸늘하다.. 운조차 따르지 않는다

 

셋째, 나의 resume, cover letter는 여전히 개선을 필요로 한다. 한달이 넘는 시간동안 구직을 하며 내 resume와 cover letter를 열심히 다듬었다. 시니어 개발자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가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덕분에 내가 처음 구직할 마음을 먹고 작성했던 최초의 형태와 비교했을 때는 질적인 면에서 확실히 안정되고 더 나은 서류들이 된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레쥬메를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또 개선할 여지를 지적받는다. 어찌됐든 내 레쥬메를 검토해주고 조언을 해주는 건 고맙고 내가 개선할 여지를 찾아 수정을 해야하겠지만, 이쯤되니 조언하는 이들의 개인적인 선호의 차이도 보이는 것 같아 내 나름대로 각 이야기들을 정리해가며 내 서류에 녹여내보는 중이다.

 

넷째, 나의 background가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결국 채용 여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을 개발자로서는 어설픈 나의 background가 매우 아쉽다. 과연 내가 저 쟁쟁한 후보자들을 제치고 개발자로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들게하는 나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본다. 학력과 경력은 구직을 하는데 있어 가장 강력한 요소이지만 한편으로는 resume와 cover letter를 어떻게든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작업해보는 것 말고는 절대 손 쓸 방법이 없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사실들이다.

 

다섯째, 독일에서 독일어를 못하는 외노자로 살아가고 있다. 앞서 링크드인에서 공고 자체의 양이 부족하다 했지만 독일어 공고까지 범위를 넓힌다면 그래도 경우의 수가 많이 늘어난다. 그러나 나는 현재 영어 공고만을 필터링해서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독일에서 개발자로 취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한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처음에는 5월 말쯤이면 구직에 성공하고 집도 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낙관적인 전망을 했었지만, 위와 같은 이유들로 어려운 현실을 자각한 지금은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시간이 계속 가게 될 것이라는 걸 쉽게 예측할 수 있고, 수개월 후에 독일어라도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있다면 개발자로서 구직을 하는데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높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수개월 후에라도 개발자로 취업이 어렵다면 독일어를 활용한 다른 어떤 일이라도 구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고.

(1)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2) 외주는 더이상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현 상황에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가장 효율적인 투자는 독일어를 배우는 방향이라 생각이 들었다. 이 전략에서 가장 큰 문제는 금방 바닥나버릴 잔고이지만 당장 한 달 앞의 문제는 아니니 그건 그때가서 해결하기로 하고 일단 다시 배워보는 걸로.

 

갑갑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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