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퇴사하는 과정에서, 나는 처음 퇴사의사를 밝힌 시점으로부터 2개월을 더 근무했었다. 처음 퇴사의사를 밝힌 시점은 7월이었고, 대표와 이야기를 통해 9월로 퇴사일정을 잡았다. 퇴사의사를 전달하는 미팅에서 대표에게 내가 얼마나 더 근무해주길 원하냐고 먼저 물었고, 그와 조율을 통해 2개월 뒤로 날짜를 잡았다.
이후 이 결정을 주위 사람들과 공유했을 때, 대부분이 의아함을 표시했었다. 보통 퇴사의사를 밝히고 2주, 길면 1달 이내에 퇴사를 하는 것이 깔끔하고 일반적인데 무엇하러 2달이라는 긴 시간동안 근무'해주냐'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왜 심지어 그 기간을 회사 측에 물어봐서, 그쪽에서 결정하도록 했냐는 의문이었다. 평소에 그다지 모질게 행동하지 못하는 나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내가 이번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일까봐 내심 걱정을 해줬던 것 같다. 혹은 개중에는 '회사는 나의 적이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내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답답하게 바라봤다. 심리상담을 하는 어떤 이는 이러한 내 행동이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뿐 아니라, 실제로도 나보다 강한 이를 도우려하는 행위'이고, 이것은 어쩌면 내 내면의 취약한 어떤 부분이 세상을 잘못 이해하고 오지랖을 부리게끔 한걸지도 모른다고, 진심으로 도움을 주려했었다.
그런 걱정과 이해가 불쾌했다. 그들이 내 행동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한 생각들이 부분적으로는 사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사실 내가 그렇게 행동했던 가장 큰 이유는 다른데 있었기 때문이다. 퇴사를 고민하던 7월 무렵 아버지와 퇴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다. 당시 나는 2~3주 이후로 퇴사 날짜를 계획하고 있었고 이를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그러나 아버지 생각은 달랐다. 아버지는 내가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먼저 회사 측에 원하는 일정을 묻고 진행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어떤 관계이던지 마무리를 맺을 때 잘 맺어야 한다", "내가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당신의 인생이 항상 그래왔듯이.
당시 그런 이야기를 들은 나는 짜증이 났었다. 일단 그렇게 회사와 조율을 하게 되면 100%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진행할 수도 없을 뿐더러, 지금까지의 내 모든 인생을 걸쳐 들어온 그 "교훈"이 지긋지긋했기에, "예, 아버지는 당연히, 또 그런 이야기를 하시겠지요"하고 그냥 넘겨버리려했었다. 나는 이미 아버지가 경험하지 못한 놀랍고 색다른 사건들과 시간들을 지나온 성인이고, 나에게 유익한 방향은 무엇인지 내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낡은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생각했다. 짜증을 참아가며 조금 더 고민을 해봐도 내가 옳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회사측에 내 퇴사 날짜를 물어보는 바보같은 행동을 한다고? 그렇게 되면 내가 원하는 방향을 조금은 포기해야하는게 자명한 결과인데? 그리고 내 계획대로 한달 이내에 퇴사를 한다고해도 관계가 틀어질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굳이' 그런 오지랖을 부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 판단과 생각은 이미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었고, 그렇기에 아버지의 의견을 따라 행동하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스스로도 설득이 충분히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한번만 더, 그냥 그분의 의견에 순종한다는 생각만으로 그렇게 행동했다. 딱 하나 동의한 부분은, 내가 금전적으로나 다른 어떤 면으로도 상황이 급박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조금의 손해는 기꺼이 볼 수 있는 여유는 있다는 점이었다. 근 몇년간 아버지의 의견에 사사건건 반대를 표해왔기에, 일종의 여유를 부릴수 있는 이 상황에서 그냥 한번쯤은 내 생각을 꾹 누르고 아버지를 기분 좋게 해드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대표와 다시 미팅을 잡고 조율한 결과 2달 후의 날짜로 퇴사일을 확정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내 행동을 선택할 때 주된 고려대상은 회사와 대표가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의식하며 이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나 자신도 내 행동에 동의하지 않았을 뿐더러 모종의 분노까지 느끼고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해못하겠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거나, 이 행동의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다며 내 행동의 원인을 들여다보려 할 때마다 불쾌감이 치솟는 것이었다.
아니 나도 바보같은 행동이라는거 알아.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니까?!
이 행동이 결과적으로 어떤 상황을 낳았고, 일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여기서는 굳이 밝히고 싶지 않다. '바보같지만 올바른 행동'을 했을 당시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후에는 내 짧은 생각을 뛰어넘는 더 좋은 일을 초래했다던지, 바보같은 일은 역시 바보같은 일이었고 다만 그 때 그런 행동을 한 자체로 의미가 있다던지 하는 의미부여는 굳이 하고싶지 않다. 그냥 문득 이 아침에 옛 사건을 곱씹으면 아직도 치밀어오르는 화를 가다듬고 글로 적음으로써 나 자신을 한번더 보듬었다는 생각까지만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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