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 상황이 예상과는 다르게 꽤나 어려워지는 걸 지켜보며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독일에서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직장을 잡는 것이 기본적으로 가능하긴 한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비현실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현재 내가 최우선순위로 삼고 해결해야하는 문제는 독일에서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것이고, 그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취업에 성공해야하기 때문에 결국 나에게 이외의 별다른 선택권은 없어보였다. 그저 부족한 부분들을 열심히 채워보자는 전략으로 계속해서 시도했다. 어찌됐든 지금보다 더 나은 개발자가 된다면 리쿠르터들의 눈에 조금이라도 더 띄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개인 프로젝트도 하면서 코딩 감을 잃지 않고, Leetcode도 계속해서 푸는거야.
동시에 레쥬메도 피드백들을 수집해 열심히 고쳐가면서 지속적으로 지원을 해보자.
더 나은 개발자가 되자...!
...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회사가 없이도 혼자서도 코딩을 지속하고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내적인 동기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나를 발견해버리고 만 것이다.😇 무언가를 개발하고 싶다는 그 어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을뿐더러, 아예 코딩조차 하기 싫고 모든 것이 귀찮다는 느낌까지 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독일에서 취업하기 위해 노오력하며 바득바득 살아남기에도 모자른 마당인데,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무언가 이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방향은 아닌가 싶은 생각들이 마구 들었다.
나는 개발자로 더 성장하고 싶은게 맞나...?
사실 그동안 구직(혹은 이직)을 위해 인터뷰를 볼 때마다, 그저 면접관들에게 어떻게든 어필하기위한 목적으로 내가 얼마나 내적인 동기부여가 충만하고 성실한 개발자인지 꾸며내어 이야기하며 모종의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사실 나는 실제로 '그런 개발자'는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알았을 수도..?)
나 자신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감정적으로도 급격히 다운되고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무거워졌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급기야는 이런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나는 코딩을 왜 할까?
차라리 다른 걸 해볼까?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로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것에 재미를 느낄까? 어떤 프로젝트를 해야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몇일을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딱히 진전은 없었고, 마침내 혼자서는 도무지 무언가 발전적인 생각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새로운 인풋이 필요했다. 프로그래밍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관점의 전환이 필요했다. 비록 생계를 위해 시작한 프로그래밍이긴하지만 그래도 이걸 정말 재밌어하던 순간들이 더러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어떤 지점들이 내가 프로그래밍을 계속하게 했었는지 기억해내고 싶었다. 이러나저러나 지금과 같이 고립된 상황을 지속하는 건 발전적이지 않기 때문에 일상에 새로운 액션이 필요하다 느꼈다.
🍃리프레시가 필요했다.
이전에 Meetup에서 봐두었던 Hackergarten이 기억났다. Hackergarten은 독일에 와서 처음 알게되었는데, Meetup에서 각 지역을 기반해서 정기적으로 운영되는 개발자들의 모임이다. 이곳에 모인 개발자들은 자기의 오픈소스를 공유해서 다른 이들과 협업하기도 하고, 가볍게 기술 관련 수다도 떨곤 한다. 내가 있는 슈튜트가르트는 베를린처럼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지역은 아니기 때문에 모임 자체가 독일어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확인차 운영진에게 메세지로 "여기 영어 쓰는 모임이니?"라 물어봤더니, "독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영어로 진행하면 돼. 편하게 참석해^^"라는 답을 받았다.
모임은 Vaihingen에 위치한 한 회사에서 주최했다. 2등으로 도착한 나는 사람들이 다 모이길 기다리는 동안 먼저 모인 이들과 이야기도 하고, 무료로 제공되는 음료들도 마시면서 아이스브레이킹을 했다. 한쪽에서는 포켓볼도 치던데, 독일어로 이야기하면서 놀길래 가까이 가지는 못했다😂
참석하기로 한 사람들이 모두 도착하자 미팅룸에 모여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전에도 이미 수차례 모임이 있었고,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모임은 열댓명 남짓의 사람들 중 몇몇이 자신의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해당 프로젝트에 흥미가 있다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중에는 E2E 테스트 툴을 만드는 프로젝트도 있었고, Vue 기반의 Stepper UI를 만드는 프로젝트도 있었다. 나는 Elgato사의 조명 기기를 http 프로토콜로 제어하는 앱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이 프로젝트는 사진 우측에 있는 친구가 혼자 작업하던 오픈소스 프로젝트였다. 이미 NestJS로 작업한 엔드포인트들을 여러 언어의 라이브러리로 배포해보는게 주된 아이디어라고 소개했다. 코드베이스를 설명해주며 한참을 같이 논의했는데 웬걸, 막상 뜯어보니 이 프로젝트는 같이 해볼만한 작업요소가 딱히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버리고 말았다.🥲 뭐 나중에 해볼만한게 있는지 한번 두고보자~ 하는 식으로 대화가 대강 마무리되었다.
이후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피자를 같이 먹으며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고 다시 팀별로 모였다. 다른 팀들은 계속해서 프로젝트를 논의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으나, 조금 전에 프로젝트의 방향을 잃어버렸던 우리 팀은, 모르겠고 그냥 수다나 떨자 하는 식으로 흘러가기 시작해버렸다. 😂
위 사진에서 내 옆에 앉아있는 상당한 고인물 개발자 형님이 먼저 썰을 풀기 시작했다. 형님의 직장생활 썰을 듣다보니 어느새 이야기는 AI로 넘어갔다가 이어서 하드웨어로 넘어가고, 다시 머신러닝으로 넘어갔다가 LLM 으로 흘러갔다. AI이야기를 하다보니 전기차 이야기가 나오고, 헬스케어 분야로 급선회를 해서 헬스케어의 데이터의 편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고인물 형님의 이전 회사 썰로 돌아갈 때 즈음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해가 지는 8시를 훌쩍 지나 세상이 어두워졌는데도 이들의 이야기는 그칠줄을 몰랐다. 어느정도 듣다가 슬슬 흥미를 잃어버린 나는 일어나서 인사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이들이 공유하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라는 것들이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았다. 단순히 내가 만들고 싶고, 지극히 개인적이며, 그냥 재밌어서 하는 프로젝트의 코드를 오픈하면 그게 오픈소스가 되는 모양이었다.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그렇게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거기 있는 그 누구도 이견이 있어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픈소스'하면 거창한 프로젝트들만 떠올려서 그게 뭐 대단한 것인줄로만 여겼는데,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npm에 그렇게나 많은 라이브러리가 등록된거구나...싶다.😅
'나는 코딩을 왜 하는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뭐 사실 무슨 답을 얻기를 특별히 기대하고 간 것도 아니었다.🤷♂️ 그냥 뭐 흥미로운 프로젝트 없나, 다른 개발자들은 뭐하고 사나 구경해보려고 가볍게 참석해본 모임이었고, 기대보다 크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경험이었다. 모처럼 S반을 타고 좀 멀리 가서 바람도 쐬고, 맛있는 피자랑 음료들 마시면서 새로운 사람들 만나고 하는 자체가 좋았다.
나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독일인이거나 독일에서 일을 오래한 관계로 사실 독일어로 모임이 진행되는게 자연스러웠다. 오직 나 때문에 영어를 공용어로 쓰려고도 시도했으나 그게 쉽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불편해져서 그냥 독일어로 진행해달라 요청했고, 프로젝트별로 모였을 때에만 함께한 이들이 나를 배려해 영어로 소통해주었다. 내가 독어를 구사할 수 있었으면 조금 더 재밌는 모임이었을지도?
5월 밋업에는 참석할 계획이 없다. 독어가 안되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흥미를 잃은 가장 큰 요인이다. 테크가이들의 대화에서 오가는 주제들 또한 나에게는 그닥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나는 찐 테크가이들이랑은 좀 거리가 있다. 내 포지션은 어디쯤일까...?
이런... 질문만 또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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