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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글쓰기

나도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있었다.

by Kyle Ausk 2024. 5. 22.

Digital Nomads (Pixabay)

20대 초중반 즈음이였던 것 같다. 오피스에 직접 출근하지 않고 원격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치앙마이, 발리 등의 휴양지에서 여행도 즐기며 자유롭게 일을 하는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많이 다니지 못했을 뿐이지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그런 삶을 자연스럽게 동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연히 그런 삶은 엄청난 전문성을 가지고 있거나, 충분히 여윳돈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특권 같은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정말로 내 삶을 그 방향으로 계획하고 준비할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당시의 내 삶은 특출날 것 없는 대학생 신분에, 당장의 미래도 불투명한 시기였으니까. 디지털 비즈니스와 관련한 일은 할 줄도 몰랐고 관심도 없는 평범한 문과생이었다.

 


 

그 이후로 내 삶의 궤적은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변화했다.

 

1. 프로그래밍

졸업 후에 우연히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다. 2020년 초였던 당시는 코로나 유행이 막 시작했을 무렵이라 취업시장에서 개발자 수요가 아주 높던 시기는 아니었음에도 내가 어떻게 이 길을 선택하게 된건지 아직도 조금 신기하다. 아무튼 처음 프로그래밍을 배우던 시기에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힘들었고 이 필드에서 특별히 전문성이 없는 존재라는 걸 스스로 알았기 때문에, 당시에 나는 그저 취업이 되기만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화려한 개발자의 삶같은 건 꿈꾸지도 않았다. 처음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한지 1년이 되었을 무렵 너무나 감사하게도 나를 좋게 보고 채용해준 회사가 있었고, 그렇게 나는 프로그래밍이라는 스킬을 가지고 개발자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2. 외주 프로젝트

그러나 아쉽게도 첫 회사에서의 업무가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는 React.js를 주력으로 하는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고 싶었는데 회사에서는 PHP를 만지는 일이 더 많았다. 그마저도 Controller와 뒷단은 손도 못대고 View단만 깨작대는 수준이었다. 불안을 느낀 나는 혼자라도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에 사이드프로젝트와 스터디들을 하기 시작했다. 경험했던 여러개의 프로젝트들 중 초기에 만난 한 디자이너 분과 어떻게 연이 오래 이어지게 되었다. 작년에 퇴사하고 독일에 나올 무렵 내 경제상황을 지탱하던 외주작업들은 모두 그분과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들이었다.

 

3. 독일

나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4학년이 되어 다들 열심히 취업준비를 하고 있을 때 나는 거의 한 해 동안 독일어를 공부했다.(이미 남자 동기들보다 2년이 늦은 4학년이긴 했다.😅) 나는 졸업을 하고 독일에 가서 다시 공부를 시작해볼 생각이었다. 막연하게 인문학이나 신학 등을 다시 공부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졸업을 할 때 즈음 되어서 그게 너무 무모한 일이라는 것을 실감했고, 자연스럽게 독일행을 포기하게되었다.

 

그리고 나는 인턴을 하고,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4년이 흘렀고, 그 때 마음을 두었던 독일이라는 나라에 나는 결국 발을 디뎠다. 특별한 계획은 없이. 

 

 


 

지금 나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Santa Lucia 역 옆의 KFC에서 야간 기차를 기다리며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이틀 전 슈튜트가르트에서 이곳으로 내려와 이탈리아를 여행중인 친구 부부와 함께 짧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베네치아에서 맛있는 해산물 요리로 즐거운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이튿날 돌로미티 투어를 다녀왔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오늘 아침, 로마로 향한 부부와 헤어진 후 혼자 베네치아를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현재 나는 파트타임과 프리랜서 업무를 겸하고 있다. 친구부부와 여행을 하던 중에도 밤과 새벽으로 조금씩 일을 했고, 베네치아를 정처없이 헤매는 중에도 와이파이와 콘센트가 있는 카페를 찾아 간간히 일을 했다.

베네치아 수상버스 타고 저녁먹으러 가는 중 🛥️

 

 


 

얼마전 집에 돌아가는 S반에서 그동안 얼굴만 알고 지내던 한 분을 만났다. 처음으로 각자가 하는 일과 전공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눌 기회가 되었는데, 내 소개를 간단히 마치자 그 분이 나에게 물어왔다. "그게.. 디지털 노마드, 그런 건가요?"

 

 

어쩌다보니 그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돌로미티 브라이에스 호수에서 기막힌 뷰와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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