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모든 일정을 마치고 잠시 일을 하러 스타벅스에 들렀다. 두어시간 정도 일을 하고 나니 어느새 카페가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교회 사람들이 어디 모여서 맥주를 마시고 있을까 싶어서 두 사람에게 연락을 해봤으나 바로 답장이 오질 않았다. 답장을 기다리는 겸 천천히 걸어서 반홉까지 갈 때까지도 답이 없길래 집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고 에스반을 타러 갔다.
오늘은 나만의 아주 개인적이고 독특한 트라우마 (비슷한 무언가) 때문에 정신적인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날이었다. 스타벅스에 혼자 있게 될 즈음에는 사실 이미 마음이 지쳐있었다. 연락을 한 두 사람에게 답장을 기다리기도 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답이 안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에스반을 기다렸다. 기다리는동안 할 게 없었다. 방금 막 깔끔하게 일을 마쳤기 때문에 일에 대한 생각은 할 필요가 없었다. 뭔가 킬링타임을 하고 싶은데 인스타그램도 재미가 없고, 스포츠뉴스도, 링크드인도 재미가 없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켰다 껐다를 반복해보지만, 엔터테인을 위한 어플따위는 없는 나의 스마트폰으로는 더이상 할게 없었다. 잠시 멍하게 있었던 것 같다.
문득 어제 한 지인으로부터 전달받았던 한 글이 생각났다. 그 글은 그 분께서 본인의 지인으로부터 공유받는 묵상(겸 일기)들 중 하나였는데, 그 글들을 읽는 것이 본인에게 얼마나 즐거움과 공감이 되는지 소개해주며 나에게도 공유해준 것이었다. 메신저를 키고 그 글을 읽기 시작했다. 매일 적는 묵상치고는 꽤나 길이가 있는 글이었다. 딱히 두서는 없고 그저 생각이 흐르는 대로 쓴 것처럼 보이는 글이었다. 그러나 그 글에는 삶에 대한 진솔한 고백과 사랑, 기쁨이 담겨있었다. 지쳐있고 어딘가 쓸쓸한 내 마음에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글을 읽고나니 나도 글을 쓰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 와서 벌써 몇번째 이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냥 아무 이유없이 글을 쓰고 싶다.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어떻게 써내려갈지 나름대로 고민을 할 것이고 그것이 조금은 고통스럽겠지만, 왜인지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다. 특히 오늘과 같이 어딘가 마음이 지친 날이면 더더욱 글을 쓰고 싶다.
나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나와 내 일상, 내 주위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딱히 어떤 주제에 대해서 글을 적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이 하루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나의 생각, 그리고 그 생각으로부터 이어지는 나의 과거에 대한 기억들을 적고싶다. 그래, 과거를 기억하고 싶다.
묵상을 적고 싶기도 하다. 어차피 하나님이 아닌 다른 독자가 존재하는 웹 상에 글을 적는 이상 100% 솔직한 글을 적을 수는 없다. 그래도 나의 삶과 나의 신앙을 아우르는 나의 생각들을 이곳에 토막토막 적어보고 싶다. 나의 삶에서 나의 주님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고, 기억하고 싶다.
딱히 상정할 독자를 떠올릴 수는 없는데, 나름대로 누군가를 생각하고 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블로그에 글을 쓸 이유가 전혀 없다. 그냥 메모장에 적으면 되는 것 아닌가? 잠시 이 긴 글을 로컬 옵시디언에 적어보는 상상을 했다. 재미가 없다. (아마 그래서 내가 일기 쓰기를 지속하지 못했던 것 아닐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련다. 그냥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 아무렴 어때? ... 그래도 나를 변호할 겸 조금 바꿔말해보자면, 사람이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기표현 욕구를 충족시키는 중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사실 이 그냥 글을 쓰고싶은 욕구는 나에게 있어서는 아주 귀한 경험이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하고 싶은 것, 그런게 내 삶에 몇개나 있었던가? 일에 대한 열정도, 특별한 취미도 없는 나에게 이런 욕구는 아주 특별한 일이고 잘 다룰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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